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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불교 철학 적용

불법승, 삼보란 무엇인가.

by 삶의 지혜 2025. 3. 23.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불법승(佛法僧)'이라는 말이다.
절에 가면 스님들이 예불을 올릴 때, 불법승 삼보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말을 읊조리는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 세 글자는 단순한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불교를 이루는 뿌리이며 중심이며 목적 그 자체다.
'불(佛)', '법(法)', '승(僧)'은 각각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만, 이 셋이 모였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삼보(三寶)'라 부른다.
삼보란 말 그대로 세 가지의 보배, 즉 삶을 바르게 인도하는 세 가지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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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불(佛)은 깨달은 이.

불(佛)이란, 고통에서 벗어나 진리를 완전히 깨달은 존재를 말한다.
우리가 부처님이라 부르는 분이 바로 그 불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수행을 통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른 인간이다.
그는 단지 자신만을 위한 해탈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세상에 전해 모든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이러한 자비의 마음과 지혜를 갖춘 이가 바로 부처이며, 불교는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불은 단순히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이며, 우리가 닮아가야 할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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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법(法)은 진리의 가르침.

법(法)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말한다.
이 진리는 단순히 종교적인 교리나 철학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할 근본적인 원리이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은 변하고(무상), 모든 존재에는 실체가 없으며(무아), 집착은 괴로움을 낳는다(고).
이러한 법은 개인의 믿음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부처님은 이러한 법을 '있는 그대로' 보고 깨달았으며, 그 진리를 제자들과 중생에게 전달하였다.
우리가 경전을 읽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모두 이 법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법은 길이며, 방법이며, 동시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본래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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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승(僧)은 바른 길을 함께 걷는 수행 공동체.

승(僧)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수행자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단순히 스님 한 명 한 명을 지칭하기보다는, 이 가르침을 따라 사는 모든 이들의 '공동체적 모습'을 의미한다.
왜 이 승(僧)이 삼보의 하나로 여겨지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가르침을 지키고, 이어가고,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이들이 있어야만 진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승가는 바로 그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또한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같은 뜻을 품은 이들과 함께 수행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래서 승가는 우리가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며, 외로움 속에서도 진리를 붙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살아 있는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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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불, 법, 승이 바로 삼보이다.

왜 이것을 '보배'라고 했을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괴로움을 만난다.
그 괴로움 앞에서 방향을 잃고 헤맬 때,
부처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셨고.
그 가르침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었고.
수행자들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며 우리를 이끌어 준다.

이보다 더 귀한 보배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삼보를 삶의 중심에 두고,
그 삼보를 믿고 따르며 살아가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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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삼보는 단순히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도 부처가 있고.
내 삶 속에도 법이 흐르며.
내 주변에도 승가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삼보를 삶에서 만나는 사람은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바르게 살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